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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문학 책 시

9월의 시모음 - 이채, 안도현

by sk2nd 2025.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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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시모음

9월은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경계의 달입니다. 무더위가 물러가고 하늘이 높아지는 계절, 선선한 바람과 함께 삶과 계절의 의미를 돌아보게 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많은 시인들이 9월을 노래하며, 삶의 무게와 가벼움,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성숙과 회한을 시어로 풀어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채, 이해인, 조병화, 안도현, 오광수, 오세영 등 여러 시인들의 9월 시를 함께 읽고, 작품 해설과 감상평을 나누며 각 시인들의 프로필까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9월의 노래 - 이채

나도 한때 꽃으로 피어
예쁜 잎 자랑하며
그대 앞에 폼 잡고 서 있었지

꽃이 졌다고 울지 않는다
햇살은 여전히 곱고
초가을 여린 꽃씨는 아직이지만

꽃은 봄에게 주고
잎은 여름에게 주고
낙엽은 외로움에게 주겠네

그대여!
빨간 열매는 그대에게 주리니
내 빈 가지는 말라도 좋겠네

감상평과 해설

이 시는 인생의 순환과 자연의 리듬을 담담하게 표현합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삶도 피고 지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계절에 무언가를 내어주고 결국 열매를 맺는다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낙엽을 ‘외로움에게 준다’는 구절은 가을의 쓸쓸함을 진솔하게 드러내면서도, 빨간 열매를 ‘그대에게 준다’는 말에서 사랑과 헌신이 묻어납니다.


중년의 가슴에 9월이 오면 - 이채

사랑하는 사람이여!
강산에 달이 뜨니
달빛에 어리는 사람이며!
계절은 가고 또 오건만
가고 또 오지 않는 무심한 사람이여!

내 당신 사랑하기에
이른 봄 꽃은 피고
내 당신 그리워하기에
초가을 단풍은 물드는가

낮과 밤이 뒤바뀐다 해도
동과 서가 뒤집힌다 해도
그 시절 그 사랑 다시 올리 만무하니
한 잎의 사연마다 붉어지는 눈시울

차면 기우는 것이 어디 달뿐이랴
당신과 나의 사랑이 그러하고
당신과 나의 삶이 그러하니
흘러간 세월이 그저 그립기만 하여라

감상평과 해설

이 시는 중년의 가슴에 찾아온 9월의 애잔함을 노래합니다. 달빛과 계절의 순환은 계속되지만,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중년의 삶은 청춘과 다른 무게를 지니며, 사랑과 세월을 되돌릴 수 없다는 허무 속에서 더 깊은 그리움을 안게 됩니다.


9월이 오면 들꽃으로 피겠네 - 이채

9월이 오면
이름 모를 들꽃으로 피겠네
보일 듯 말 듯 피었다가
보여도 그만
안 보여도 그만인
혼자만의 몸짓이고 싶네

​그리운 것들은 언제나
산 너머 구름으로 살다가
들꽃 향기에 실려 오는 바람의 숨결
끝내 내 이름은 몰라도 좋겠네

꽃잎마다 별을 안고 피었어도
어느 산 어느 강을 건너왔는지
물어보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서글프지만은 않네

9월이 오면
이름 모를 들꽃으로 피겠네
알 듯 모를 듯 피었다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혼자만의 눈물이고 싶네

감상평과 해설

화려함보다는 소박한 들꽃의 삶을 닮고자 하는 시인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아도,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는 구절에는 겸허함과 초연함이 있습니다. 9월이라는 계절이 보여주는 담백한 아름다움이 들꽃의 이미지와 겹쳐집니다.


삶과 낙엽 - 이채

낙엽이 떨어져 땅 위로 뒹굴며 말합니다
삶을 이루었노라고
내가 떠나서 거름이 되어야
푸른 녹색 정원을 이룰 수 있다고

나는 자신에게 묻습니다
내 삶이 다할 때
삶을 이루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 후세에게
나의 삶이 과연 거름이 될 수 있을까

내게 던진 이 물음은
내 삶의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감상평과 해설

이 시는 죽음을 단순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거름으로 보는 생태적 관점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 또한 타인과 후세를 위한 거름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전하며, 가을 낙엽이 주는 상징을 철학적으로 풀어냅니다.


이채 시인 프로필

  • 본명: 이채(필명)
  • 활동 분야: 현대 시인, 에세이스트
  • 특징: 자연과 삶을 비유적으로 연결하며, 소박한 언어로 깊은 깨달음을 전하는 작품 세계로 유명

가을 편지 1 - 이해인

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순하고도 단호한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며
산길을 걷다 보면

툭, 하고 떨어지는
조그만 도토리 하나

내 안에 조심스레 익어가는
참회의 기도를 닮았네

감상평과 해설

수녀 시인 이해인의 시답게 따뜻하면서도 내면의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작은 도토리를 통해 참회의 기도를 연상하는 장면은 가을의 깊이를 영적 차원까지 끌어올립니다.


이해인 시인 프로필

  • 출생: 1945년 강원도 강릉
  • 직업: 가톨릭 수녀, 시인
  • 문학 세계: ‘그리움과 용서’, ‘기도와 사랑’을 주제로 한 서정적이고 종교적인 시어

9월의 시 - 조병화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여름만큼 무거워지는 법이다
스스로 지나온 그 여름만큼
그만큼 인간은 무거워지는 법이다

또한 그만큼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 가벼운 만큼 가벼이
가볍게 가을로 떠나는 법이다

기억을 주는 사람아
기억을 주는 사람아
여름으로 긴 생명을
이어주는 사람아

바람결처럼 물결처럼
여름을 감도는 사람아
세상사 떠나는 거
비치파라솔은 접히고 가을이 온다

감상평과 해설

조병화의 시는 계절을 통해 인간 존재의 무게와 가벼움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여름의 무거움은 경험의 축적을, 가을의 가벼움은 떠남의 자연스러움을 상징합니다.


조병화 시인 프로필

  • 출생: 1921년 경기도 안성
  • 주요 활동: 시인, 문학평론가
  • 문학 세계: 실존적 질문과 인간 존재의 무게를 계절의 이미지로 표현

9월이 오면 - 안도현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을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9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9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감상평과 해설

안도현의 시는 강물의 흐름을 삶과 사랑에 비유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도 흘러야 하며, 결국 다른 이들에게까지 생명을 나누어 주는 것이 참된 사랑임을 노래합니다.


안도현 시인 프로필

  • 출생: 1961년 경북 예천
  • 대표작: 연탄 한 장, 너에게 묻는다
  • 특징: 일상의 사소한 사물과 풍경을 따뜻하게 노래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함께 담음

9월의 약속 - 오광수

산이 그냥 산이지 않고
바람이 그냥 바람이 아니라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약속이 되고 소망이 되면
떡갈나무잎으로 커다란 얼굴을 만들어
우리는 서로서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

손내밀면 잡을만한 거리까지도 좋고
팔을 쭉 내밀어 서로 어깨에 손을 얹어도 좋을 거야
가슴을 환히 드러내면 알지 못했던 진실함들이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산울림이 되고 아름다운 정열이 되어
우리는 곱고 아름다운 사랑들을 맘껏 눈에 담겠지

우리 손잡자
아름다운 사랑을 원하는 우리는
9월이 만들어놓은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에서
약속이 소망으로 열매가 되고
산울림이 가슴에서 잔잔한 울림이 되어
하늘 가득히 피어오를 변치 않는 하나를 위해!

감상평과 해설

오광수의 시는 ‘약속’이라는 단어를 통해 관계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자연의 풍경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서로의 가슴에서 울림을 주는 약속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적 사랑의 메시지가 느껴집니다.


오광수 시인 프로필

  • 현대 한국 시인
  • 주요 주제: 사랑, 약속, 공동체적 연대
  • 문학 세계: 진실한 인간관계와 자연의 울림을 결합한 서정성

9월 - 오세영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코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코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감상평과 해설

코스모스를 통해 삶과 죽음, 기다림과 성숙의 의미를 묻는 시입니다. 들길에서 피어나는 코스모스는 인간의 유한성과 영혼의 순환을 상징하며, 9월을 ‘하늘이 열리는 달’로 정의하는 결말은 철학적인 울림을 줍니다.


오세영 시인 프로필

  • 출생: 1942년 전남 영광
  • 문학 경력: 한국 현대시의 대표 서정 시인
  • 특징: 자연과 존재를 연결하며, 죽음·성숙·삶의 철학적 의미를 탐구

결론

9월은 시인들에게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삶과 사랑, 성찰과 회한을 담는 상징의 달이었습니다. 이채의 시에서 본 소박한 들꽃과 낙엽의 철학, 이해인의 영적 성찰, 조병화의 존재론적 사유, 안도현의 강물 같은 사랑, 오광수의 약속, 오세영의 철학적 코스모스까지 모두 9월의 풍경 속에 깊게 스며 있습니다. 이처럼 시를 통해 9월을 마주하면, 독자는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다시금 성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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